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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삼박사 칼럼

인(仁)한 세상을 기다리며[서울일보 특별기고] 이병삼 원장

 

<서울일보 2011년 1월 06일자 신문기사 19면 pdf 파일로 보기>


인(仁)한 세상을 기다리며

작년 말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쥐식빵”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작극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과 씁쓸한 뒷맛을 남겼습니다.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부정한 방법이라도 동원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이 무섭기만 합니다

. 살벌한 생존경쟁의 시대에서 우리 또한 인성(人性)을 포기하는 동물의 세계로 편입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미 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된지 오래되었으며 사상과 문화 또한 물질을 마련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경제지상주의 세상에서 효율과 성장이라는 목표아래 숫자와 통계의 허구 속에 최고와 일류만이 살아남고 정작 사람답게 대접받아야 할 주인공인 사람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바야흐로 추(醜)한 객기(客氣)가 이미 온 세상을 지배해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무력감마저 생기게 합니다.

수족불인(手足不仁)과 인술(仁術)

한의학은 유학(儒學)의 정서가 많이 이입된 학문입니다.
특히 병없이 오래 살기 위해서는 감정을 잘 다스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의학 용어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족불인(手足不仁)은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되거나 마비되어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신체의 어느 부위라도 본연에서 벗어서 나의 정상적인 신체와 이질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불인(不仁)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맹자(孟子)에는 인(仁)에 대하여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갑작스레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그 아이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는 어린 아이의 부모와 사귀고 싶어서도 아니며, 동네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내버려 두었다고 나중에 원성을 듣게 될 것을 두려워해서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바로 남의 불행을 차마 그대로 보고 넘기지 못하는 어진 마음이 인(仁)이요, 불인인(不忍人)의 마음인 것입니다. 즉 인(仁)이란 마음은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행이나 고통은 나에게도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의술(醫術)을 인술(仁術)이라고 합니다. 환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의사의 치료가 시작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것으로서 환자와 나를 동질화하는 것이 어진 마음인 것입니다.

“너, 나, 우리” 순(順)의 공동체 의식

현대의 사회가 불인(不仁)하게 되는 첫 번째의 이유는 “나”를 가장 앞에 내세우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갈수록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나, 내 가족, 내 사람”을 우선하니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지며 모두가 경쟁자요, 밟고 일어나야 할 장애물이며, 심지어는 무너뜨려야 할 적(敵)으로까지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공존이나 상생(相生)은 정치가의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OECD국가에서도 이미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부에서 출산의 유인책을 쓰더라도 그 수치는 쉽게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러한 과열된 경쟁의 풍토에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현상이 이미 누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도,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에도 충분한 자신감이 없습니다. 또한 외형적인 경제의 성장으로 아무리 풍요로워 보여도 마음과 정신은 빈곤과 폐허 속에 방치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은 물질에만 기반한 상대적 비교를 통한 가치가 아니라 정신과 의식을 포함하여 행복을 느끼는 자신의 절대적인 마음에 있음을 깨달아야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남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각박한 경쟁 일변도의 세상에서 조금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이 토끼만도 못해서야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토끼의 해입니다. 토끼는 영특하고 민첩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성향이 너무 부각되어 교활하고 변덕이 심하여 믿지 못할 대상으로도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토끼도 자기가 살고 있는 굴 주위의 풀은 뜯어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곳의 풀이 없어지면 자신의 거처가 금방 노출되어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만이 자신의 부모형제는 물론 일가친척을 시기하며 등지고 배반합니다. 

역사를 통하여 또는 요즘의 재벌가문에서도 왕권이나 재력을 혼자 소유하려는 “형제나 가족의 난(亂)”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형제끼리도 그럴 정도인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여기듯 인(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공상일까요?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고 병사없는 장군은 존재할 수 없듯 이웃이나 다른 사람이 없는 나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모든 분야에서 인(仁)한 마음이 충만하여 온갖 구별과 차별마저 없어지는 그런 멋진 상상을 해봅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수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한의학 석사/ 박사
         서울시 한의사회 홍보이사
         서울일보 편집위원
         서울시청 발간 서울사랑 고정 한방칼럼니스트
         서강대학교 “건강과 한의학”, “사상의학의 이해”, 강의 
         서울 디지털 대학교/ 한국사이버대학교  “체질에 따른 건강법”강의
         세계 사이버대학교 “한의학 개론”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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