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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삼박사 칼럼

[한의사 진단의 가치] 단풍과 진가(眞假) (강서양천신문 2007.11.13)

온 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잎의 장렬(壯烈)한 최후이다. 밖으로 나타나는 단풍의 화려함은 자칫 식물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상태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사실은 에너지가 극도로 소진된 상태이다. 나무는 봄에 싹을 틔워, 여름내 무성한 잎을 통하여 왕성한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들고, 가을 동안에 과실을 키우고 익혀낸 후, 긴 겨울을 지내려고 뿌리 쪽으로 양분을 보낸다. 잎은 푸른색의 엽록소가 빠지면서 봄부터 생성되어 있던 색소가 드러나 노란색이나 갈색을 띄며, 뿌리로 내려가지 못한 양분이 안토시안이라는 붉은 색소를 생성한다고 한다. 하여간 영양의 고갈상태로 죽어가면서도 인간에게 호사(豪奢)를 누리게 하는 셈이니 그 덕(德)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병에 있어서도 이렇듯 밖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중점을 두다보면 자칫 그 병의 본질을 잃어 치료에 있어서도 낭패(狼狽)를 겪는 일이 있다. 환자의 몸에는 열이 있는데도 옷을 껴입으려하고, 갈증이 있어도 물을 먹으려 하지 않으며, 손발이 떨리지만 정신이 안정되어 있는 경우나 여름에 선풍기를 끌어안을 정도로 더위를 타거나, 이불을 차내고 자며, 찬 음식을 자주 찾지만 배가 자주 아프거나 설사를 하면 본질은 한(寒)으로 보아야한다. 마찬가지로 추워하면서도 옷이나 이불을 걸치지 않으려 하고, 손발은 찬데 가슴과 배는 열이 나며, 갈증이 나고 목구멍이 건조하여 입안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나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찬 음식을 즐기고 그러면서도 배탈이 나지 않고 변비의 성향이 있다면 병의 원인은 열(熱)로 보아야 한다.

손발이 찬 증상은 전체 순환혈액량의 부족으로 인하여 말초까지의 순환이 원활치 못한 경우이다. 하지만 체질에 따라 혈액량의 부족을 야기하는 원인이 다른 것이다. 체질적으로 치성한 화열(火熱)에 의하여 진액이 모손(耗損)되는 경우도 있겠고, 몸이 차서 물을 가두어 두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밖으로 나타난 기질이나 성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활달하고, 주위 사람과도 잘 어울리며, 동작이 날쌘 사람도 수양(修養)이나 참선(參禪)에 의하여 또는 환경적인 영향에 의하여 조용하고 말수가 적어서 음인(陰人)처럼 보일 수도 있고, 원래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던 사람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에 따른 노력으로 인하여 밖으로 양성(陽性)적인 면이 부각된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체질과 병증을 파악할 때는 반드시 현상에 매몰되지 말고 본질을 잘 간파해야 한다. 또한 일반인이 어떤 하나의 증상만으로 섣불리 자신의 체질을 판정하고 오래도록 몸에 맞지 않은 식이를 하거나 약품을 장기간 복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화(禍)를 당할 수 있다. 빙산(氷山)의 일각(一角)만을 보고 전체를 단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되도록 전문가에 의한 신중하고 정밀한 판단이 요구된다 하겠다. 특히 요즘처럼 잘못된 정보가 홍수를 이룰 때는 진가(眞假)를 잘 가리는 혜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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