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ical Clinic

이병삼박사 칼럼

기미 (강서양천신문 2008.2.18)

 

어느 화장품 광고의 카피에 “여자의 피부는 권력”이라고 할 정도로 피부는 아주 중요한 미적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구나 얼굴은 항상 노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한창 열을 낸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기미는 경계대상 1호이다. 

기미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병이나 심한 괴로움 따위로 얼굴에 끼는 거뭇한 얼룩점”으로 병인병리에 심리적인 요인을 간파한 것이 자못 흥미롭다. 기미는 “기믜”란 어휘로 16세기의 훈몽자회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고단한 살림살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예전에는 절대적인 영양의 부족에 의한 혈액의 화생(化生) 부족과 생활고(生活苦)가 주된 요인이었겠으나 요즘은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양방적으로는 피부 표피층의 멜라닌 색소와 진피층의 색소세포의 증가 때문으로 보며 임신이나 피임약의 장기 복용, 갑상선 기능의 이상, 난소나 자궁 등의 여성생식기 질환, 강한 자외선에의 장시간 노출, 습관적인 음주나 흡연 등을 원인으로 잡고 있다. 

한방의 견해로는 혈액순환의 장애를 가장 큰 요인으로 본다. 기미를 간반(肝斑)으로 표현하듯 혈액을 저장하는 간장(肝臟)에 혈액량이 부족해지면 각종 효소나 호르몬의 합성과 분비가 원활하지 못하고, 그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화(火)의 기운으로 변한다. 또한 생각이 과도하게 많아서 노심초사(勞心焦思)나 절치부심(切齒腐心)하게 되면 비장(脾臟)이 정미로운 기운을 만들지 못하며 심화(心火)가 왕성하게 되어 혈액의 대사가 약해져 화조(火燥)한 기운이 얼굴에 결체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화열(火熱)이 많은 사람이 진액을 마르게 하는 파, 마늘, 생강, 고추 등 맵고 더운 성질의 음식을 즐기거나, 몸이 차서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이 커피, 녹차, 코코아, 초콜릿 등 이뇨작용을 촉진하는 카페인 음료를 많이 마셔도 순환혈액량이 줄고 몸이 건조하게 된다. 흔히 어혈(瘀血)로 표현되는 혈액의 점도가 끈끈한 상태도 순환장애를 가속화한다. 

특별히 산후에는 기미가 발생하기 가장 쉬운 상태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임신시에는 태아에게 영양을 많이 빼앗기고, 출산시의 출혈과 출산 후의 오로(惡露) 배출의 미진과, 산후 모유수유에 의하여 순환혈액량이 최저에 이르기 때문이다. 산모는 혈허(血虛)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산 후에 제대로 조리를 하지 못하고, 찬 바람이나 과도한 햇볕에 노출되거나, 신경을 많이 쓰는 산모는 어느 덧 그 세월의 풍상(風霜)이 기미가 되어 최악의 상태를 이룬다. 따라서 기혈(氣血)을 보하고 순환을 돕는 산후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주역(周易)에 “추워지면 얼음이 얼고, 서리를 밟으면 곧 굳은 얼음이 이를 것”이라 하여 일의 기미(機微)를 알아 미리 조심하고 두려워하라고 깨우쳐주는 대목이 있다. 기미 자체도 문제지만 혈액과 심리상태의 문제를 일러주는 낌새를 무시하면 더 큰 화(禍)를 당할 수 있으니 서둘러 초동대처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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