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ical Clinic

이병삼박사 칼럼

코피 (강서양천신문 기고 08.3.17)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코피를 흘리는 것은 과로나 무리한 생활로 몸의 허약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을 주로 설정하곤 한다. 주로 낮 동안에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가 잠자리에서 코피로 이불을 적시거나, 공부에 지친 수험생이나 밤새 야근에 지친 직장인이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코피를 많이 흘리곤 한다. 신혼이라면 무언가 뻔히 안다는 눈빛으로 얄궂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야?”라며 반농조로 놀림을 받기도 한다.

코피가 나는 것을 너무 쉽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불편증상 말고도 건강에 있어 더 큰 화(禍)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코피가 너무 심하게 나서 그치지 않고, 몸이 뜨겁고 맥이 위로 뜨며, 숨이 차고 손발이 싸늘하게 차가워지는 것은 기(氣) 또한 혈액을 따라서 체외로 빠져나가 음양이 모두 망탈(亡脫)된 위급한 증상이므로 속히 인삼을 써서 기를 올리거나 반드시 입원 안정하여 수액과 포도당을 공급해줘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코피를 자주 흘리게 되면 단순히 코 속의 혈관이 약하다고 하여 레이저로 혈관을 지져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코 속의 점막에 있는 혈관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가늘고 약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혈관에 압력이 발생하여 터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혈압이 있는 사람들이 코의 혈관이 터져서 코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뇌혈관이 터져서 뇌졸중(중풍)이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적으로는 위장 경락의 혈열(血熱)로 인하여 혈관이 팽창하여 압력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경우와 전체 순환혈액량이 적어 머리나 얼굴 쪽으로의 기혈순환이 원만하지 못할 때 그러한 상황을 보상하기 위하여 심장의 박동수를 늘리고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코와 피부의 기능은 폐에 의하여 좌우되고 혈액 또한 간에서의 화생과 해독이 주가 되기 때문에 폐와 간의 상태를 잘 살펴야한다. 

체질적으로 위장에 열이 편중되어 음식량이 많고, 변비의 성향이 있으며, 얼굴이 쉽게 달아오르거나, 입이 자주 마르는 등 기가 위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사람은 열을 끄고 지나친 상기(上氣)를 끌어 내리며 수분과 진액을 보충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몸이 너무 차고 마르며, 음식량이 적고 소화에 탈이 많으며, 혈압이 낮고 혈색이 창백한 사람은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끌어올려줘야 한다. 또한 누구나 마음을 편안히 갖고, 욕심을 줄여서 무리하지 않으며, 적절한 혈액의 순환 상태를 잘 유지한다면 코피뿐 아니라 다른 병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한번의 코피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몸 상태를 체크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진단의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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